'마지막'이란 말은 사람을 참 벅차게도, 달음박질 치게도 만듭니다. 올해의 마지막 집담회 장소인 삼성서울병원에 달음박질 치면서 벅찬 마음으로 도착하였습니다.
매번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넓은 대지에 크고 쾌적한 병원 설비 때문에 참 편리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느 병원을 가나 제 집 같고 편한 것이 숨길 수 없는 직업병인가 봅니다.
저와 같은 마음으로 동참해 주신 "장 사랑" 팬클럽 선생님들 100여분의 참여 속에 김영호 선생님의 사회로 증례 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집담회의 주제는 '진단이나 치료가 어려웠던 염증질환'이었는데, 주제가 주제인 만큼 빠른 속도로 접수된 증례를 모두 발표하는 것보다는 소수의 증례를 보더라도 충분한 논의가 더 중요하였기에 12증례 중 6증례만이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발표 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제 시간에 참석 못하신 앞선 선생님들 덕분(?)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제일 처음으로 발표한 증례는 경희대학교병원의 크론병에서 thromboembolism이 발생한 증례였습니다. 이는 드물지만, 증상이 있을 경우 크론병의 합병증으로 thromboembolism을 꼭 생각해 봐야겠다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또한, 질병의 활성도와 thromboembolism이 관련이 높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하니, '어떤 것도 100%가 없기 때문에, 열린 자세로 환자를 치료해야 되겠구나'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준 증례였습니다.
제게 가장 흥미로운 증례는 계명대학교에서 발표한, 크론병의증으로 치료받던 환자가 5년 만에 결핵성 대장염으로 진단된 증례였습니다. 염증과 관련된 장 질환이 진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증례는 김영호 선생님께서 중간 발표 즈음 진단에 대해 좌중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voting을 실시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를 여쭤보는 등 interactive conference를 시행하셔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또한, 함께 참석해주신 병리과 선생님께서 granuloma가 뚜렷하게 보이면, 크론병보다는 결핵일 가능성이 좀 더 높다라는 tip을 알려주셔서 더욱 유익한 배움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한양대학교구리병원에서 발표한 순응도가 낮은 크론병 환자에서 coccygeal abscess를 효과적으로 치료한 증례는 인내심을 갖고 환자를 치료한 선생님들의 의지가 돋보이는 증례였습니다. 본 환자의 경우 수술적 배액술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으나, 환자가 수술 후 관리를 잘 받지 못할 경우 오히려 치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경피적 배액술을 결정한 경우로 적절한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의 순응도까지 고려해야 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분당제생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증례는 결핵성 장염으로 치료 받은 중년의 기혼 여성에서 PCP와 ARDS 치료 도중 AIDS를 진단한 증례였습니다. 환자가 자녀가 있는 중년 기혼 여성이라는 점에 HIV 감염의 가능성을 염두 해 두지 않았다고 하니,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어떠한 경우라도 섣부른 판단은 옳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희 병원의 경우 HIV 혈청검사를 입원 환자의 경우 정규검사로 시행하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라고 가슴을 쓸어 내린 증례였습니다.
2012년은 장연구학회가 설립된 지 1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며, 아시아 IBD 심포지엄도 계획돼 있어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는 김효종 회장님 말씀을 끝으로 올해의 마지막 집담회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집담회를 마치고 고픈 배를 움켜쥐고 맛있는 한우 200인분이 기다리고 있는 뒤풀이 장소에 도착 하였습니다. 역시 많은 선생님들께서 뒤풀이에 참석하셔서 송년모임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몇 배의 술이 돌고 맛있는 한우를 먹으면서 여러 선생님들께 인사 드리고 증례에 대한 뒷 얘기, 사람 사는 얘기 등 저도 취기가 오르고 분위기도 달아 오르면서 1년의 마지막 집담회는 끝이 났습니다.
집담회 개최에 도움을 주신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선생님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또한, 적재적소의 의미 있는 질문과 매끄럽고 원활한 진행으로 집담회를 열린 배움의 장으로 만들어 주신 김영호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효종 회장님의 마지막 말씀이 귓가를 울립니다. "재미있는 증례, 아쉬운 증례 남겨두고 떠납니다." 2012년을 여는 다음 번 집담회 때, 다 하지 못했던 재미있고, 아쉬운 증례들을 다시 만나볼 생각을 하면 벌써 제 마음은 따스한 봄입니다. 같은 마음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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